경동제약 류덕희 회장(화학과 56) 인터뷰(1) - 나눔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다
- 자연과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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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5
올해 3월, 대부분의 학생들은 개강 후 달라진 교내 카페의 모습과 리뉴얼된 식당메뉴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나날이 풍요로워지는 학교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누가 우리의 학교생활을 지원해주는지 궁금증을 가졌을 것이다. 학교의 변화는 성균관대학교 선배들의 기부금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척 많은 졸업생들이 학교의 발전과 후배들의 보다 풍족한 생활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학교발전기금, 글로벌센터건립기금, 학과발전 기금 등 총합 약 90억을 학교에 기부한 경동제약 류덕희 회장(화학과 56)을 만나보았다.
◎ 류덕희 회장의 발자취
류덕희 회장은 1938년 5월 20일에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했다. 고등학교 때 그는 굉장히 지적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화학시간에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선생님을 골리기 위해 화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화학시험에서 전교 1등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그의 화학에 대한 관심은 커졌다. 화학에 대한 관심을 간직하고 있었던 그는 결국 1956년에 우리 학교 화학과에 입학했다. 7남매의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아들이었던지라 대학시절 가정교사 일을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집안사정이 정말 여의치 않을 때는 휴학 후 1년 동안 서울전기라는 회사에서 일을 하며 학비를 벌기도 했다. 그는 교내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3학년 2학기 때에는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학생회장으로서 4.19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서 참여했다. 1961년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사업을 하다가 1975년 경동제약을 설립했다.
◎ 류덕희 회장님의 동반자, 경동제약의 이모저모
- 경동제약이 걸어온 길
경동제약은 의약품 제조업체이다. 1975년 9월에 유일상사라는 회사명으로 시작해 1976년 경동제약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경동제약 설립 초반에 아스피린과 달리 위에 부담을 덜 주는 위장약과 비타민 등을 제조하고 팔았다. 더 나아가, 1980년대에는 류덕희 회장의 주도로 수입약품을 국산화하는 작업과 의약품 원료를 개발하는 작업도 행했다. 이 때 개발한 의약품 원료에 대해 특허를 신청해 수익을 얻었다.
현재 생산하는 의약품은 소화기관용제, 항생제, 항균제, 항바이러스제 등이며 이 외 다양한 의약품을 제조한다. 1990년대부터는 해외시장에 진출해 현재는 동남아시아와 중남미에도 원료의약품과 완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실로 경동제약은 1985년, 1995년, 1998년에 걸쳐 유망중소기업 및 우량중소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1999년에는 중소기업 수출기업화사업 대상기업에 선정되었다. 이후 수출에 박차를 가해 2001년에는 ‘백만불 수출의 탑’, 2007년에는 ‘삼백만불 수출의 탑’, 2013년에는 ‘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류덕희 회장은 ‘국제인증 규격화 작업 등을 통해 수출을 더욱 늘려갈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 경동제약 들여다보기
경동제약의 상호명은 서울의 동쪽에서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류덕희 회장은 ‘경동제약’의 어감이 부드럽고 편안하여 그 이름이 꽤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경동제약의 사훈은 ‘진실되고 근면하게 창조하고 개발하여 성심으로 봉사함으로써 인류의 건강과 행복의 길잡이가 되겠다.’이다. 이 사훈에는 류덕희 회장이 강조하는 가치가 모두 들어가 있다. 류덕희 회장은 경동제약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직원들의 공’과 ‘자신이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은 것’을 꼽았다. “우리 회사가 이렇게까지 클 수 있었던 이유는 직원들 덕분이지요. 모두가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 주었으며 더 좋은 의약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습니다. 나를 믿고 따라와준 우리 직원들에게 회사성공의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성공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제가 저의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다는 점을 꼽고 싶네요.(웃음)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회사의 수익보다도 사람들에게 더 좋은 약품을 싸게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을 사람들이 알아주었기 때문에 경동제약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경동제약이 항상 성공가도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류덕희 회장이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 은행에서 자금을 빌렸는데 이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꽤 컸다고 한다. 은행에 담보도 잡혀있는 상황이었고 막 회사를 설립했을 때는 큰 매출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류덕희 회장의 통찰력으로 인해 해결될 수 있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경동제약은 사람들의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순환기내과와 비뇨기과 계통의 질병이 많아진다는 점을 포착했다. 또한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장기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그는 순환기와 소화기계통의 의약품에 주력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안정됨에 따라 사람들이 미용에 신경쓴다는 점을 고려해 피부과계통의 의약품도 개발했다.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 그에 걸맞은 의약품을 개발한 것은 경동제약이 초반의 경제적 어려움에서 탈피하게 도왔다.